한국의 문화주역 - 김중업 편- KBS- 1984. 10. 19.
이 글은 1984년 10월 19일에 kbs에서 방영한 '한국의 문화 주역'이라는 프로그램의 내용을 옮긴 것이다. 당시 자택이 수원의 이목동(당시에는 수원에서도 외진 곳이어서 이목리라고 불림)에 임대를 살고 계신 것으로 보아 경제적으로 어려우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마당에는 석물들이 보인다. 본인의 저서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에서 프랑스 강제출국 전에 그 당시까지 모아놓은 석물들을 세금 때문에 다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고 기술한 것으로 보아 일부 되찾은 것이거나 다시 구매하신 것으로 추측된다. 촬영 당시 6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노쇠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너무 안타깝다. 촬영 중에도 담배를 계속 피우는 모습에서 평생 동안 창작의 스트레스를 담배로 풀어왔고 그것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방송이 생방송이기 때문에 주제가 명확하지 않고 추상적이거나 논리 정연하지 못한 건 한계를 보인다. 이후에도 타계 1년 전까지도 KBS에 몇 편 더 출연하시는데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라도 본인의 모습과 육성을 후대에 남겨놓으신 것은 후학들에게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나운서(송지헌) : 가을 아침, 숲의 공기가 싱그럽습니다. 여기는 수원시 이목동입니다. 서울에서 새벽길을 40여 킬로미터를 달려서 찾아온 한국의 문화주역, 건축가 김중업 씨 댁입니다. 뜰에 저는 서있습니다. 10월 문화의 달을 맞아서 집중 기획한 12회 연속 한국의 문화 주역은 지난 한 달간 저희 KBS가 각계각층의 지식인들에게 추천 의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선정한 이 시대의 주역을 만나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건축부문에서 선정이 되신 김중업 씨 댁을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아주 뜰이 좋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중업 :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나운서 : 잠시 앉으셔서 몇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거 뭐 거닐다 보니까 감나무인가요? 감이 열려있나요?
김중업 : 예, 열려있습니다.
아나운서 : 그리고 하나둘 떨어지고 있습니다.
김중업 : 예, 떨어지고 있군요..
아나운서 : 수양버들이 좋고..
김중업 : 예, 고맙습니다.
아나운서 : 근데 선생님 저.. 대개 그 집을 가게 되면은 이것저것 살펴보게 되거든요.
김중업 : 옳은 말씀입니다.
아나운서 :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 집주인의 삶의 체취가 묻어있으니 까요.. 저 오늘 아침 기대가 컸습니다. 건축가이신 김 선생님의 댁은 어떻게 지어놓으셨을까.. 이거 선생님이 지으신 거예요?
김중업 : 아니올시다. 이거 죄송합니다. 이런데 모시게 돼서 사실은 이거 빌려 살고 있습니다. (ㅠㅠ)
아나운서 : 네.. 그럼 저희들과는 달리 더 예민하시니까 불편하신 점은 없으세요?
김중업 : 왜 불편 좀 하지만 일단 참고.. 임시로 와 있으니까..
아나운서 : 네.. 그럼 뭐 선생님 다음에 직접 설계해서 사시는 데를 또 한 번 찾아봬야 되겠네요.
김중업 : 꼭 좀 모셔야죠. 예.
아나운서 : 근데 지금 저희가 선생님께서 지으셨냐고 여쭤본 것은 저희들 같은 경우에는 건축가 하고 만나기가 쉽지 않거든요.
김중업 : 그렇습죠.
아나운서 : 그런데 이 건축가라든지 건축이라는 예술이 일반 대중하고 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만은 일반 대중에게 미치는 건축가가 지어놓은 건축물들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십니까?
김중업 : 네. 사실 건축이라는 것은 인간하고 가장 밀접한 것 아니겠어요? 물론 건축이라는 건 인간을 위해서 지어지는 거고 또 일단 인간을 감싸줘야 되는 거고 그런데 우리 삶을 들여다보면 공기나 물이라는 것이 우리하고 직결되어 있고 아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상당히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이 건축도 마찬가진데 말하자면 사람이 집 속에서 태어나고, 또 집속에서 살고, 집에서 운명한다 말입니다. 그렇게 하고 활동할 때 눈을 뜨고 있으면 보이는 것이 집이 아무 때나 사람을 따라다니고 있는 것같이 보이고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관심이 좀 적은 것 같아요.
아나운서 : 그럼 선생님 훌륭한 건축물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김중업 : 그러니까 훌륭한 건축물이라는 것은 딴 것이 아니고 인간에게 말하자면 보금자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주어야 한다 하는 기능적인 면하고 또 봤을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하여튼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하는 것이 원칙이지 아니겠어요?
아나운서 : 그중에서도 저희가 김 선생님 생각하면은 삼일로 빌딩이 더 많이 알려지지 않았나 싶어요.
김중업 : 네, 많이 알려졌지요..
아나운서 : 그거 지은 신지가 꽤 오래되지 않습니까? 설계해서..
김중업 : 네, 그렇습니다. 한 15년 됩니다.
아나운서 : 지금 한번 돌이켜 보시면 삼일로빌딩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중업 : 글쎄 뭐 부끄럽습니다. 사실 15년 된 건물인데 저로서는 그때에는 제 모든 실력을 다 발휘해서 하여튼 그 도시 안에 한 개의 *점경으로써, 하여튼 까만 한 흑수정 같은 것을 만들려고 애써봤어요. 근데 지금에 와서는 물론 그 **점도 성장하고 있고 사람들의 보는 눈도 자꾸 달라져가니까 저로서는 불만스러운 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만든다면 좀 더 나은 것을 만들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일단 그 삼일로 빌딩이라는 것을 놓고 볼 적에는 아직도 애껴주는 분이 꽤 많이 계신 것 같아요. 그것은 어디서 오는 문제인가 할 것 같으면, 일단 비례에서 오는 문제예요. 일단 비례는 그때나 지금이나 어느 정도 이쁜 비례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하여튼 애껴주신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 점에서는 작가로서는 좀 흐뭇하죠. 그렇지만 지금 작가가 지금 성장하고 있으니까 자꾸 불만은 스러운 거죠. 작가로서는.. 예.
*점경 (點景)
[명사] [건설 ] 건물의 규모나 용도를 나타내고 현실성을 주는 것
** "저도 성장하고"라고 말하시려던 것 같다.
아나운서 : 이것은 어떤 건물입니까?
김중업 : 요건 불란서 대사관입니다.
아나운서 : 이것도 우리의 눈을 깜짝 놀라게 했던 건물입니다.
김중업 : 예.. 요 불란서 대사관은 사실 그때 제 출세작입니다만은 이 작품을 만들고 나서 드골 대통령에게서 국가 공로훈장도 받았고 또 슈바리에라는 기사 칭호도 받았습니다만은 그래서 좀 더 외국에도 알려진 건물이고 또 제가 말하자면 불란서 오래 가있게 된 원인도 이러한 데서 온 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동안에 좀 개악이 됐어요. (역시 직설적이심ㅋ) 제가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에.. 그래서 옛날 모습하고 달라진 것이 좀 아쉽군요.
요것이 지금 어드멘가하면 저 한국미술관이라고 불리워지는 겁니다. 현재 한국미술관으로써 기능하고 있습니다만은 본래 설계할 때에는 이태리 대사관저로서 설계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태리 대사가 살 던 집이죠.
아나운서 : 이 건물은.. 다 선생님 기억하고 계시죠?
김중업 : 그럼요, 그럼요. 이것은 교육개발원 신관인데 톨게이트 채 못 미쳐서 까만 집이 이제 숲 속에 보이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인가 하면 우리 동양건축이라는 건, 특히 한국 건축이라는 것은 소위 자연 주변에 감싸 져서 제대로 동화하면서도 자기 나름대로의 한개의 말하자면 당당한 맛이라든가 또 자기나름대로의 예쁜 모습을 가져왔어요. 그러한 것을 추구했던 겁니다. 요것은 육군박물관입니다. 육사 구내, 태릉 육사 구내에 있습니다만은..
아나운서 : 겉모습이 상당히 웅장한데요?
김중업 : 예, 웅장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요것은 한남동 한강변에 있는 소위 '이강홍 씨 주택"인데, 개인집입니다. 요것은 방배동에 있는 민 사장 댁입니다.
아나운서 : 일반주택을 보시는 건 감회가 상당히 다르실 것 같아요. 큰 건축물과는 달리..
김중업 : 그럼요..
아나운서 : 이것은 선생님 대표작 아닙니까?
김중업 : 요것이 제주대학교 본관 건축입니다. 제주대학교 본관도 외국에서 많이 인정을 받고 21세기의 건축이다하는 칭호를 받은 건축입니다만은, 요새는 그것이 이용이 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소위 초라해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아나운서 : 선생님 그동안에 여러 작품을 소개해주셨습니다만은 지금까지 설계하신 작품이 모두 몇 작품인지 기억하시는지요?
김중업 : 하하.. 글세요. 헤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아마 수백 점은 되겠죠. 그렇지만 수백점 속에 일단 이루어진 것은 수십 점밖에 없습니다. 그런 얘기는 구상에서 끝난 작품이 훨씬 많다는 얘기가 되겠죠.
아나운서 : 건축가에게는 구상하는 작업 자체가 하나의 예술세계고 그걸 작품으로 봐야죠?
김중업 : 물론, 물론 하고.. 또 구상하는 순간이 가장 즐거운 겁니다.
아나운서 : 이건 선생님 뭘 구상해 놓으신 거예요?
김중업 : 예, 요건 바다 호텔, 바다 호텔입니다.
아나운서 : 원뿔형이죠?
김중업 : 원뿔형입니다.
아나운서 : 근데 선생님 저희들이 저 얘기를 듣고요. 지금 바다 위에 둥실 떠 있는 모습인데요. 저게 과연 바다에 뜨면은 어떤 모습일까? 선생님 어떻게 상상하시고 만드셨어요?
김중업 : 예, 그러니까 말하자면 인공적으로 한 개의 섬을 만드는 얘기 아니겠어요? 그 섬에 아기자기한 모든 것이 들어베기게 되는데 그것이 이제 바다에 띄우게 되니까 원뿐형이 가장 안정된 형태고 또 그 내부공간이 가장 말하자면 극적인 내부공간을 가지게 되요. 그래서 그 원뿔형태의 바다호텔을 일단 인천 앞바다에다 건, 남해에 건, 제주도 앞바다에다 띄워서 한번 국위를 선양해 보자 했던 것이 한개의 목적이죠.
아나운서 : 그것만 해도 저희들에게는 그냥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그런 집은 상상을 못 할 집이고요. 그다음에 퐁피두센터입니까? 불란서. 그런 건물, 그 외 많은 현대 건축물들이 좀 어떻다 그럴까요? 그로테스크해진다고 그럴까요. 조금 친근감이 안 가는..
김중업 : 예, 그런 점이 있죠. 그런데 이제 문제는 무언가 하면, 문화라는 것은 말이죠. 현실 부정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말하자면 현실보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창조작업을 한 게 문화란 말이에요. 그렇게 할 것 같으면 소위 창조작업, 내일을 위한 꿈. 뭐 이런 것이 실현된다는 것은 이제까지 보던 것과 좀 색다른, 그런 감을 느끼게 되겠죠. 자연히, 그렇게 때문에 일단 좀 그로테스크하다는 말씀도, 낯설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 낯설다는 것은 인간의 한 개의 습성으로써 곧 동화가 되요. 동화가 되고 나면 그것이 자연과 더불어 한개의 제2의 자연으로써 존재해버리게 되고 말아요. 그러면 인간에게 많은 얘기를 던져준다고 할 수 있겠죠. 근데 가장 많은 얘기를 던져줄 수 있는 것은 미래지향적인, 꿈인 담긴 그러한 작업이 돼야 많은 얘기를 던져 주고 그게 후대에 우리네들의 자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아나운서 : 할아버지에게 새로운 얘기를 들을 때, 그 호기심 나는 것처럼요.. 꿈을 아마 심어주시고 설계하시고 하는 것이 건축가의 한 작업일 텐데요. 그것이 지금 선생님 구상해놓으신 것처럼 그렇게만 끝나서는 안되고 현실화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중업 : 옳으신 말씀입니다.
아나운서 : 지금 저희들이 문화진흥을 위해서 말이죠. 어떤 정책이라든지, 어떤 투자라든지, 그런 것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실천이 되어야 된다고 보는데 선생님 의견을 어떠십니까?
김중업 : 옳은 말씀입니다. 그건 하여튼 우리나라가 여태까지 뜀박질을 해오지 않았어요? 뜀박질을 했는데, 뜀박질을 했다는 것은 일단은 낙후된 한국이 전진 자세를 취했다는 것인데 이제부터는 질의 문제가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질이 문제가 된다는 것은 차분히 앉아서, 차분히 뒤를 돌아다보고 앞을 명확히 그려나가는 한 개의 비전, 구상이 뚜렷한 작업들을 해나가야 될 것 같아요.
아나운서 : 지금 86 아세안게임, 88 올림픽, 이런 것도 온 국민이 꾸는 하나의 꿈이거든요.
김중업 : 꿈이죠. 그러니까 그 꿈을 위해서는 일단 꿈에 부응하는 작품들이 나와야겠죠. 예, 그래서 국민들이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고 자기 나름대로의 즐거움이라든가, 또 남한테 보이고 싶다는 충동이라든가, 자랑하고 싶다든가, 이런 것을 느끼려면 좀 더 질적으로 좀 더 좋고, 좀 더 보다 나은 작품들을 만들어야 되겠죠.
아나운서 : 그러니까 88 올림픽이다 그러면, 어떻게 보면은 온 국민이 건축가예요.
김중업 : 그렇죠. 옳은 말씀입니다.
아나운서 : 올림픽을 하는 집을 만들어 간다는..
선생님, 문화 발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세요?
김중업 : 저는 문화는 발전하다고 보진 않고요, 문화라는 것은 변천해왔다고 봐요. 그러니까 얼굴을 달리 해왔는데 이제부터 우리는 좀 더 밝고 새로운 얼굴을 되찾을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이건 상당히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아나운서 : 변화하는 것이다. 편리해졌는데요. 편리해지면서 과연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가치관은 점점 뚜렷해지는 것이 아니라 희미해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는데요.
김중업 : 그렇죠. 옳은 말씀이죠. 그렇다는 얘기는 무엇인가 하면 우리네들이 삶에 있어서에 추구하는 꿈이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겠죠. 또 좀 더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고.. 그 달라지고 있는 꿈을 어떻게 뒷바라지해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고 건축가는 꿈 없이는 작업을 못해요. 그러니까 내일을 위한 꿈을 던져 주는 사람. 또한 던져 받는 국민은 그것을 생생하고 아름답고 또 앞으로 큰 희망을 던져주면 애낄줄 아는 국민이 또 육성돼 오는 거죠.
아나운서 : 누구나 집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 옛날에는 토담 같은 것도 있고, 가족이 옛날에는 집을 지었다고도 볼 수 있잖아요. 집이라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김중업 : 그렇습죠. 네, 집이라는 것은 일단은 자화상이에요. 살고 있는 사람 고대로 그 집에 나타나야 됩니다. 그러니까 집 하나하나가 살고 있는 사람의 교양이라든가, 취미라든가, 또 정도에 따라서 모습이 다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자기 알맞은 옷, 옷도 자기 알맞는 옷을 우리가 만들어 입지 않아요? 그와 마찬가지로 집도 자기에게 맞는 집이 더 편하고 더 떳떳하고 또 어디까지나 살기 좋은 집이 되겠죠.
아나운서 : 근데 그 옛날의 한옥이 점점 사라져 가고, 초가도 없어져 가고, 근데 그 옛 선인들께서 나름대로 집을 지던 그 지혜에서 현대건축을 하시면서 배울 점이 있으십니까?
김중업 : 그럼요. 배울 점이 많죠.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선지식이 대단했다고 볼 수가 있어요. 요새 시세대로 말한다면 센스가 좋았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 지붕의 물매의 선 같은 것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고요. 또 그 지붕들이 그렇게 하늘에 사뿐히 올라앉을 수가 없었고요. 그건 초가집이나 기와집이나 마찬가지입니다만은. 그건 우리 풍토에서 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풍토가 금수강산이라고 하고 있지 않잖나요? 수정도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 중에 하나고. 자연이 그렇게 수려하고 말하자면 인간에게 부담을 덜 주는 자연을 갖고 있는 나라예요. 그렇기 때문에 급류도 별로 없지 않아요? 굽이굽이 강도 돌아 내려가고. 그러다 보니까 그런 곡면이라든가 곡선에 대한 감각이 상당히 예민했어요. 그런데 그걸 지금 현대에 와서 자꾸 잊어버리고 있단 말이에요. 그것은 일단 후퇴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아나운서 : 그걸 자꾸 또 재연하는 것, 과거를 잊지 않는 것, 그것도 건축가의 한 책임이죠?
김중업 : 책임이죠. 큰 책임이죠.
아나운서 : 연결시키는 작업을 해주셔야 할 것 같고요.
김중업 : 그럼요, 그럼요.
아나운서 : 선생님 그리고 아까 자화상이라고 그러셨잖아요. 집이요. 근데 이제 선생님이 직접 그리신 자화상은 아니지만 선생님이 사시는 모습도 가까이서 뵙고 싶고요. 생활하시는 방을 안내해 주시겠어요?
김중업 : (겸연쩍게 웃으며) 예, 예.. 알겠습니다. 안내하겠습니다.
아나운서 : 같이 올라가시죠 (내부로 이동)
[내레이션]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이다.
빛과 그림자의 교향악이다.
인간이 빚어놓은 엄청난 손짓이다.
질서의 샘이다.
알뜰한 자연 속에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바쳐진 또 하나의 자연을 빚는 사람. 건축가 여천 김중업. 그는 서울을 몹시 착잡해한다. 그가 사랑하는 만큼 착잡해한다. 서울이 찌푸리고 일그러져 보이기 때문이다.
형언하기 힘들 만큼 깔끔하고 예뻤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비례 감각으로 서울을 구출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자기 세계를 통해 보는 그의 눈에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르 코르뷔지에.
그의 눈이 열리도록 이끌어 준 스승 르 코르뷔지에는 그래서 늘 그의 곁에 있다. 현대건축의 하나의 틀을 만들어 놓은, 몇백 년 만에 한번 나올까 싶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닦아준 시각으로 명동을 걸어본다. 좁고 꼬불꼬불했던 옛날 명동이 그리워서 바다 호텔에 해상 1층에 재연에 놓기도 한 초이상주의 낭만파 여천 김중업의 시선에 오늘의 명동은 어떻게 비춰질까?
살고 싶어져야 하잖은가
꿈이 있고 시가 있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정다웁게
모여살고 싶어쟈야 하잖은가
아나운서 : 네, 선생님. 명동 거니는 모습이었죠?
김중업 :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하하
아나운서 :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하고 많이 부딪히며 살게 되지 않습니까? 요즘은요.. 고향이 어디신지 궁금합니다.
김중업 : 네, 고향은 전 평양입니다.
아나운서 : 그러시군요. 그럼 참 고향 생각이 간절하시겠네요.
김중업 : 그러믄요. 월남민이죠.
아나운서 : 선생님도 실향민이시겠습니다만은 어디 뭐 저희같이 남쪽이 고향인데도 부딪히며 살면서도 고향을 잃어가는 것이 도시 현대인 실향민이다 하는 얘기도 있습니다.
김중업 : 예, 예, 참 슬픈 일이죠. 사실 우리는 고향을 되찾아야 될 것 같애요. 되찾는 다는 것은 물론 실지회복을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서울이면 서울에 고향을 둔 분이라든가, 이남에 고향을 둔 분도 너무 획일화가 되어가다 보니까 고향이 갖던 멋들이 자꾸 없어져 버리는 것 같애요. 그것이 젊은이들에게 주는 영향이 너무 크지 않느냐.. 특히, 이제 명동거리를 거느렸습니다만은 사실 명동거리만 하더라도 차는 일절 들어가지 못하게 했어야 되는데 일시 또 그렇게 하더니 요새 차들이 맘대로 다니더군요. 그러니까 이제 보행자 천국이라고 외국에선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일단 보행하는 사람들이 마음놓고 걸어다닐 수 있는 그런 구역들은 자꾸 넓혀가야 할 것 같애요.
아나운서 : 어릴 때 마음대로 뛰어놀던 골목.. 어른들도 그런 골목이 필요한 겁니까? 하하
김중업 : 그럼요, 그럼요.. 필요하지요.
아나운서 : 선생님 그 건축가라는 것이 공간을 만든다고 할까요. 그런 하나 작업을 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선생님이 갖고 싶은, 누리고 싶은 공간, 어떤 것입니까?
깁중업 : 그러니까 공간이라는 것은 넓은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자기에게 알맞는 공간이 필요한건데 알맞는 공간이라는 것은 자기 체취가 물씬 풍겨야 해요. 그러니까 소위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우리가 생각해 볼 적에는 자기가 작업을 한다든가, 자기가 거기서 쉰다든가 하는데 가장 말하자면 적합한 공간을 가져야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잘못 인식되고 있는 것이 무슨 으리으리하니 꾸미면 좋은 것 같이들 생각해서 자꾸 경쟁들은 하고 있는데
으리으리하게 꾸민다는 얘기는 자기 분에 넘치면 일단은 빌려온 사람같이 돼버려요. 그러니까 주인이 없어지는 공간이 돼요.
아나운서 : 그렇군요. 공간을 누리는 게 아니라 공간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시죠.
김중업 : 그렇죠.
아나운서 : 선생님 그리고 아시는 분도 있으시겠습니다만은 문단에 등단하신 시인이시기도 한데요..
김중업 : 예, 시를 조금 썼었죠.
아나운서 : 당신은 시인입니까? 아니면 건축가입니까? 이런 질문 안 받아보세요?
김중업 : 가끔 받습니다만은.. 외국에서는 저를 시인 건축가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냥 건축가라고 부르지 않고
아나운서 : 가까운 분들 중에 시인도 많이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김중업 : 그럼요. 그럼요. 지금 뭐 살아계신 분들로서는 구상 씨라든가 또 김영태 씨라든가 이런 분하고 자주 만나고 있습니다만은 돌아가신 대선배님들이 저를 귀여워해 주셨어요. 공초 오상순 선생이라든가, 수주 변영로 선생이라든가, 영운 모윤숙 선생이라든가, 이산 김광섭 선생님. 이런 분들이 저를 무척 귀여워해 주셔서 그런 분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겠죠.
아나운서 : 그리고 선생님 아까 그 원뿔형이죠. 그 저 바다 호텔이요. 그걸 보면서 백남준 씨 고국에서 전시할 때에 깔때기 모양으로 비디오 해놓은 것을 봤거든요. 그분 하고도 가까이 지내셨지요?
김중업 : 네, 저는 그분하고 가까이 지낸 것은 미국에 가 살고 있을 때 76년도부터 80년 가까이 까지 뭐 자주 만났어요. 그 친구하고 밤새우면서 우리 전통의 얘기, 샤머니즘의 얘기를 뭐 여러 가지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만은 그 친구하고 또 바다 호텔 얘기도 했으니까 아마 그 친구가 언제 가는 한번 원뿔형으로 해보고 싶다는 (아: 작품을?) 생각도 가졌을 것 같애요.
아나운서 : 그래서 그 영감이 통하셨나 봐요?
김중업 : 예, 서로 만난다는 것은 서로 말하자면 주고받는 것이니까요.
아나운서 : 그러니까 어느 예술가에나 있어서 교우관계라고 그럴까요 상당히 중요한..
김중업 : 그럼요, 그럼요. 아주 중요한 거죠.
아나운서 : 선생님 이제 아까도 여러 작품을 쭉 봤습니다만은 저희들과는 달리 직접 지으신 건물 앞에 세월이 흐른 다음에 지나시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김중업 : 그러니까 이제 부끄럽죠. 부끄럽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제가 지은 것도 일단은 저로서는 크게 만족이 안 가니까 그러니까 제가 만족이 안 간다는 것은 역사가 만족을 안 해준다는 얘기가 되어버려요. 그러니까 앞으로 건축가라는 것은 뭐인가 하면 내일에 건 생명이거든요. 역사가 이제 앞으로 판단을 해줄 겁니다. 그런 점으로 볼 때에는 작가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말하자면 부끄러운 거죠. 제작하고 있을 때는 즐거워요. 하고 열심히 뭐 하느라고 애써요. 지어놓고 나면 그 허탈감이라는 것은 보통 큰 것이 아니야요.
아나운서 : 그 앞으로 이제 또 많은 작업을 하시겠는데요. 남겨진 생애를 어떻게 지내고 싶으신지요?
김중업 : 예, 저는 딴 목적은 하나도 없어요. 뭐 건강만 유지돼서 좀 더 살 수 있다면 일단 앞으로 국보급이 될 만한 것을 몇 점 더 만들고 죽고 싶다 하는 엄청난 욕심을 가지고 있죠. 건축은 정말 좋은 건축은 시간이 흐르면 일단 보물도 지정될 수가 있고, 지방문화재로도 지정될 수 있고 , 또 국보로 지정되는 거니까, 저로서는 국보를 만드는, 몇점이라도몇 점이라도 만드는 가능하면 몇 점이라도 만들어 놓은 한 개의 잊혀질 수 없는 건축가로서 남는 게 일단 욕망이죠.
아나운서 : 꼭 그렇게 되시리라고 믿고요. 끝으로 한 가지. 조금 범위를 축소해서, 저희들은 작은 집에 삽니다. 건축가의 꿈은 한없이 펼쳐지고 위대한 건물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집에서, 저희들이 사는 집에서 선생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김중업 : 그것은 딴 것이 아니고 집은 하나의 얼이야요. 집이라는 것은 일단 작가의 손에서 떠나고 나면 자체의 생명을 영위해 나갑니다. 그 얘기는 뭐인가 하면 그 집이라는 것이 지금같이 현대적인 기술로 지은 집이라는 것은 몇백 년이고 몇천 년이고 남을 수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남는다는 것은 그 자체 생명이 그냥 연장돼 나간다는 얘긴데. 그렇다는 얘기는 그 얼이 중요하다는 얘기는 인간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제대로 건축입니다. 그러카고 그 인간들에게 아무때라도 다시 보고 싶고 다시 들리고 하는 그러한 이제 한개 마음의 여유라 할까 그러한 것을 불어넣어 줘야겠죠.
아나운서 : 그렇게 집을 지으시는 분이 건축가고요. 그리고 또 그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은 나름대로의 정신세계를 그 속에서 펼쳐나가는 것이고 (김중업: 그럼요, 그럼요) 그래야지 그 집이 가치를 있는 것이라고..
김중업 : 그래서 그것이 무엇인고 하면 집을 다듬는 거죠. 그러니까 집이라는 것은 보존하기 위해서는 아무케도 좀 다듬어 나가야 되잖아요? 그렇게 하고 주인이라는 것은 자꾸 바뀔 거예요. 몇백 년 흐르다 보면..
아나운서 :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건 건축가의 꿈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김중업 : 예, 옳은 말씀입니다.
아나운서 : 오늘 이른 아침에 좋은 말씀 대단히 고맙습니다.
김중업 : 아니올시다.
아나운서 : 오늘도 이제 집을 나서지 않습니까? 저희들은. 저녁이면 다시 또 집으로 돌아가겠고요. 그래서 오늘 선생님 만나 뵙고 현대문명이라는 것이 숨 가쁘게 발전하고 있습니다만은 선생님 늘 얘기하시지만은 초가집처럼 정겹고 온돌처럼 훈훈하고 그런 꿈을 오늘 들려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김중업 : 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나운서 : 저희가 10월 집중기획으로 마련하는 한국의 문화 주역, 내일은 작곡가 김동진 선생님을 찾아뵙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김중업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