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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의 사라진 70년대.

그항 캬바농 2021. 6. 22. 14:01

김중업 선생의 글과 방송을 모으다 보니 알게 된 안타까운 사실은 건축가 김중업의 70년대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김중업 선생은 70년대 초반 김현옥 서울시장 등 독재정부가 밀어붙인 불도저식 도시개발에 반대하는 입장을 글과 인터뷰를 통해 분명히 했다.  그 후과로 결국 강제로 출국조치를 당했고 70년대 후반 귀국할 때까지 프랑스와 미국을 떠돌았고,  72 ~78년에는 프로젝트만 몇 건 있을 뿐 남겨진 작품이 얼마 없다.  추방전까지 꾸준했던 그의 글도 국내 신문이나 잡지에선 사라졌고 검색되지 않는다.  

 

끊겼던 소식은 1978년 10월 24일 조선일보에 김중업 선생이 영구 귀국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다시 등장한다.  기사에 보면 프랑스 몽펠리에 대학, 미국 USC, RSID, 하버드대학 등에서 강의했다고 나오는데  당시의 해외대학 강의, 연구자료 등을 찾아낸다면 김중업선생의 잃어버린 70년대 고리를 이을 수 있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건축가는 죽는 날까지 휴식이 없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한국 건축에 대한 책임감도 느껴지지만 그간의 고초를 일절 언급하지 못하는 모습에 깊은 연민이 느껴진다.  아래는 해당 조선일보 기사이다.

 

 


 

 

1978년 10월24일 조선일보 기사

 

 

 

 

영구귀국(歸國)한 재불(在佛)—미(美) 건축가

김중업(金重業)씨

"표정(表情)없는 건물(建物)에 마음 넣어주고 싶어"

7년이 넘게 프랑스와 미국(美國)에서 활동하던 건축가 김중업(金重業)씨(56)가 영구 귀국했다.『한창 일할 나이에 한국 건축계를 위해 이바지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껴 아주 귀국하기로 결심했어요. 해외에서 습득한 지식과 견문을 살려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싶고, 이제부터 차분히 건축가다운 작품을 해나가고 싶어요. 아울러 한국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건축학도들에게 가르쳐볼 생각입니다.』

김(金)씨는 1942년 부터71년까지 30여 년간 한국 건축계를 위해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온 증진으로 대표작은 주한(駐韓) 프랑스 대사관, 삼일빌딩, 서강대(西江大) 본관 등 수없이 많다. 65년 프랑스 국가 공로훈장과 함께 귀족 칭호(슈바리에)를 받은 김(金)씨는 이것이 인연이 되어 71년 프랑스 정부초청으로 도불(渡佛)했다.

『프랑스에서는 말몬시(市)공회당, 지중해(地中海) 레저타운 등 정부와 교육성의 일을 하면서 정부 공인 건축가 자격(PPLG)과 파리 건축대학 명예졸업장을 받았고 남불(南佛) 몽펠리에 대(大)에서 건축과 도시계획을 강의하는 등 3년 반 체재했어요.

75년 미국(美國)으로 건너가 남가주대(南加州大)에서 강의하다가 76년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RISD)의 정교수로 초빙된 후 하버드대(大) 평가 교수직을 겸하게 됐지요. 또 하버드대(大) 교수들과 함께 건축연구소도 냈고요.』

김(金)씨가 이 모든 명예와안정된 일을 버리고 귀국을 결심한 것은「고국을 위해보다 나온 일을 하고 싶어서」라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 사회의 공인으로서 한국의 건축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각오로 들아왔다는 것이다.

『현대의 도시는 너무도 각박해져 가고 건축물은 표정을 잃고 있어요. 건축 자체가 기능에만 치중, 너무 추상화되어있기 때문이죠.

이는 자매 예술과의 절연(絶緣)으로 사랑과 시(詩), 향수 등 인간성을 상실한데 원인이 있다고 봐요. 제가 이제부터 할 일은 건축에 인접예술을 집어넣어 건축을 인간에게 되돌려주는 작업입니다. 건축이 어떻게 하면 인간에게 즐거움과 자부심과 시(詩)를 줄 수 있을까를 모색하는 작업이지요.』

장식 과다의 로코코 건축에 대한 반동으로 건축이 기계화되고 기능화되어 갔지만 이제는 다시 인간다움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세계 건축의 경향이 달라져가고 있다고 김(金) 씨는 전한다.

『경제사정이 좋아진 우리도 도시계획과 건축에 좀 더 신경을 써, 도시가 숨 쉴 구멍을 찾고 즐거움을 되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건축가는 죽는 날까지 휴식이 없다』고 말하는 김(金)씨는『할 일이 너무 많다』며 마음과 몸이 늙을까 봐 걱정이란다. 김(金)씨는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나이로비 호텔을 설계, 국제적인 활동을 하는 한편, 서울 장충동에 있는 자신의 건축연구소를 중심으로 곧 본격적인 국내 활동을 펴 나갈 계획이다.


[출처 : 조선일보 뉴스 라이브러리]
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1770519781024m10512&set_date=19781024&page_no=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