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58년에 사조(思潮)라는 잡지에 기고된 글로 파리에서 르 코르뷔지에와 협업 후 귀국해서 처음 쓴 글이다. 이와 비슷한 글을 1950년에도 쓴 적이 있는데 아래 글은 파리에서 당시 세계 건축의 중심이었던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고, 알바 알토와도 교류하는 등 현대 건축사의 한 장을 담당하는 거장들을 만나고 돌아온 후에 쓴 글이어서 비교해서 보면 좋을 것이다. 1950년 글이 일본을 통해 간접적으로 얻은 것을 바탕으로 썼다면 이 1958년의 글은 아직 파리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시기에 생생히 김중업 본인이 겪고 돌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더 깊은 성찰이 담겨있다고 할 것이다. 마지막에 당시 한국 건축문화에 대한 김중업 선생의 신랄한 일갈은 지금도 유효하기에 통쾌하다.
1. 현대건축이 걸어온 길
건축은 그가 영위된 시대의 여러조건을 가장 솔직히 표현하는 조형물이어서 각기 시대의 구성요소의 핵심을 시대의 흐름을 따라 성격이 뚜렷한 작품들로서 명확히 지구 상에 투영시켜왔다. 그러므로 건축은 시대의 거울이라고 부르며 참된 뜻에서 문화의 바로메에터어이기도 한다.
인류가 창조한 가장 최고의 작품인 돌멘에서 오늘의 뉴우욕의 스카이. 스크레이퍼어에 이르는 수만년의 인류창조의 빛나는 역사의 흐름속에서 에지프트의 피라밑이, 그리이스의 팔테논이, 로오마의 코롯쎄음이, 로오마네스크의 샬틀이, 고틱의 노오틀담이, 그리고, 루넷쌍스의 쌍.피에트로가, 각기 그가 지닌 문화의 수준을 따라 기능과 표현을 달리하여 그들을 낳은 시대의 능숙한 대변자로서의 뚜렷한 역활을 완수하여 왔다.
이렇듯 현대의 건축이란 또한 현대가 지닌 모든 조건을 뒷받침으로 하여 오늘의 가장 명확한 자세로서 지구위에 수놓여지고 있다.
그러므로 참다운 뜻의 현대의 건축이란 금세기가 지닌 과학성과 예술성과 사회성을 적확히 추출하여 가장 정확한 에레멘트로서 승화시켜 올바르게 종합, 구성해 놓은 새로운 공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현대 이루워지고 있는 수많은 구축물들이 모두가 현대의 건축이라고는 불리워질수 없듯이 구축물을 설계한다는 이들이 모두가 현대의 건축가라고 불리워 질수 없는 원인이 또한 여기에 있다.
현대의 건축이라고 불리워지기 위하여서는 전세기와는 성격이 뚜렷이 다른 새로운 공간의 표현이 요청됨과 동시에 현대가 요구하는 특수한 기능을 십이분 만족시킬수 있어야 한다.
이는 또한 20세기라는 극한된 연대위에 생을 향유하고 있는 인간들의 생태가 과거의 어느시대보담도 특이한 조건위에 놓여져있으면서도 오늘의 인간의 사고방식이란 19세기적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 인식에 도달치못하는가 또는 이해하고자하는 노력의 부족에서오는 현대의 역사를 무시하려는 무모에서 사람들은 역사의 흐름속에 자기자신이 어떠한 역할을 마타보고있다는 의식조차 잊고 그들이 생활하고 있는 시대에 대하여 전연 무관심하든가 때로는 혐오감까지도 갖고 있어 혼돈적인 양상을 연출하고 있다. -- 이러한 특수한 과도기적인 현상속에 20세기사관의 대표적인 사고와 명확한 인식위에 이루워진 업적이란 극히 희소하듯이 현대의 건축도 또한 극히 소수의 건축가들이 그리 많지도 않은 작품들을 창조하고있음은 어느 분야의 활동과도 흡사한 일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주류적인 작가와 작품을 논함에 있어 투철한 현대의식의 확고한 사관을 뒷받침하여 냉철히 진위를 판단하여 함은 물론이다.
2. 현대건축의 정의
현대건축은 반세기남직한 기간에 산업혁명을 전기로 하여 철과 그라스의 새로운 재료와 철골 및 철근꽁크리이트의 획기적인 구조방식으로서 광스판의 호올건축 및 스카이.스크레이퍼어같은 고층건축물등의 새로운 과제를 처리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건축은 방금 개장한 오빼라하우스와도 같은 인상을 준다. 현대의 최상의 건축가들은 충분한 기술적 수완과 적당한 예술적능력을 가지고있다. 그러나 관객의 측에서 본다면 다만 그들은 기술적인 조작을 함에 불과하고 관객들은 아직도 연주가 시작할것을 기다리고있다.
어떠한 건축의 계열에 있어서도 기능과 표현은 모두 그속에 같이 자리잡고 있었다. 어떠한 건축물도 빠짐 없이 최소한, 비를 막고 바람에 견디도록 구축되었으며, 동시에 가장 간단한 구조물일지라도 그것을 사용하고 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각적인 인상을 주게끔 되어있다. 즉 무의식중에, 또는 데자인의 결과로서 보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전하려 하고, 또한 그 사람의 신체의 움직임에 영항을 준다.
기초나 난방설비등으로 연출되는 눈에 보이지않는 기능은 건축적 시야밖에 존재하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조금이라도 눈에 보이는 기능은 어떠한 것이건간에 다소라도 표현에 공헌하고 잇다. 오베리스크와도 같은 단순한 기념건축물, 혼은 더욱 복잡한 구조물, 예를 들면 사원에 있어서 까지도 건축의 기능은 그것이 구현하고 있는 인간의 목적에 종속하고있다. 즉 그러한 구조물들이 논을 즐겁게하고 가슴을 울리게하는 하등의 감동도 느껴볼수없다면 어떠한 기술적인 대담성도 무의미한것이다. 실제로 관념상의 시대착오는 건축작품에 있어서는 기술적인 뒤떨어짐보담도 치명적인 것이다.
현대건축은 낡은 상징 주의의 방식이 그이상 더 현대인에게 감동을 던질수없다는것, 또한 반대로 기계문명이 가져온 새로운 기능은 무엇이건 특수한것을 이야기하려하고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달을 순간부터 현실화한것이다. 불행히도 이러한 새로운 사실을 현실화한때에 기계적인 기능은 표현을 흡수하고마는 경향이 있었다. 일부의 급진적인 구조주의자들은 표현의 필요조차도 제거하려는 무모한 행동을 일으켰었다. 그결과 건축에 있어서의 웅대하여야할 구상력은 표현성이 빈곤하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야만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많은 건축가들은 자기자신이 과한(부여한) 조형적 빈약성을 자각함에 이르렀다. 즉 기계의 교훈을 흡수하고 구조의 신형식을 추구하는 남어지 자기들이 인간의 개성의 정당한 요구를 망각하여왔다는 반성을 갖게끔되었다.
낡아빠진 상징을 배격한것은 옳은일이었으나 동시에 완전한 구조물에는 반드시 볼수있었던 인간적인 요구, 흥미 감정, 가치등을 배격하는 결과를 자아냈었다. 그리하여 이는 객관적인 기능을 주관적인 기능화 종합시켜야할 시기에 왔음을 말한다. 즉 기계의 편익을 생물적 필요, 사회적약속 개성의 가치와 평형시킴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1958년인 오늘날, 1958년의 사람들이 기계의 이익에 자신만만할뿐 도저히 예견할수없었던 여러사실에 직면하고 있기때문이다. 기계는 최고도로 발달하여도 인간정신의 일편을 보여줄 따름이고 기계가 인간의 자유로운 동력조차 평화와 풍부의 시대를 가져옴에 그치지않고 방사능에 의한 인류말살의 전쟁이라는 야만적인 결과를 가져오게끔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들의 시대는 화라데-, 크라아크.막스웰, 아인슈타인, 왓트, 벳세망아의 시대인 동시에, 또한 다아윈, 벨그송, 후로이드, 토인비이, 하와아드, 슈봐이쩌어의 시대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들의 시대는 깊은 심리탐구 높은 사회책임의 시대이다. 생물학, 사회학, 심리학에 있어서의 진보의 덕택으로 우리들은 전인간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이제는 건축가들도 경제성, 능률 추상적인 기계의 형태이외의 조건으로 전기의 이해를 표시할때가 도달한 것이다.
현대인의 다원세계에 있어서는 주체적인 흥미와 가치, 정서와 감정이 객관적인 환경에 못지않게 중대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모든 건축물은 독자의 언어를 가져야하며 그 언어는 그 건축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이해되어야 한다는것을 깨달아야한다.
3. 각국의 건축형식.
과거 일세기동안 양식건축에서 현대건축에의 도정을 살펴보면 두갈래의 경로를 밟아왔다. 하나는 새로운 훠룸(형태)을 추구한 예술가적인 건축가들의 다양다채로운 양식개혁의 모색의 길이며, 또 하나는 새로운 재료를 웅용하여 새로운 구조방식을 발전시켜 연이어 요청되는 새로운 과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건축기술자들의 점진적인 구조개편에의 길이다.
전자에 있어서는 양식혁명의 선구자들의 18인 오오스트리아의 옷또오.와그너의 유명한 저서 '현대건축'(1895년간)에서 "예술은 오로지 필요에 따라서만 지배된다"라고하고, 건축이 구비해야 할 조건으로서 "목적의 정밀한 이해와 완전한 실현, 건축재료의 최선의 선택, 간단하고도 경제적인 구조, 이러한 전제에서 이루워지는 형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주장은 고전주의며, 낭만주의며, 절충주의며, 여러 기존양식중에서 갈피를 못잡고 산업혁명에 의한 기계공업의 급진적인 발전과 푸랑쓰혁명에 의한 민족주의에의 개편앞에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던 세기말적인 불안속에 던져진 등대의 역활을 맡아보아 그의 제자인 울부릿히 홋흐만드의 분리파운동(세셋쇼)으로 하여금 건축이 지닌 기능구조재료에 대한 충실성과 경제성에의 적극적인 관심을 표시함으로써 낡은 상징주의에서 완전분리하여 기계문명을 뒷받침으로 한 현대건축에 리리크한 청신성을 부여하려고 애썼다.
이는 수공업품을 모방한 통속적인 기계제품이 유행함을 공예정신의 부패라고 인정하고 오히려 중세기적인 수공업예술에의 복귀를 주장한 라스킨과 모오리스등의 영국신공예운동과 때를 같이하여 프랑쓰, 벨기이를 중심으로 일어난 신예술운의 자연현상을 주제로한 과거의 조형에서의 대단한 분리의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리고 또한 동시기에 있어서 생물학자인 라말크의 설에 의하여 "형태는 항상 기능에 따라간다"라고 주장한 미국 시카고파의 사리방의 시도도 같은 주류에 속한다. 그의 제자인 후랑크.로이드.라이트는 극히 개성적인 건축공간으로 창조하고 특이한 조형의 구성에 의하여 서구의 건축가들의 양식개혁에 강한 뒷바침이 된다.
그러나 이 모든것은 오히려 부르죠아들의 고가한 향락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새로운 장식형식의 탐구이었음에 불과했다.
20세기초엽에 있어서의 현대건축에의 양식혁명을 참으로 힘차게 발전시킬수있는 계기를 장만해준것은 건축가들의 형식모색과는 관계없이 자본주의사회의 발전이 낳은 제2의 경로 - 실용건축과 기술자들의 새로운 공간개척- 이었다.
건축가들의 심미감의 혁명을 가져오게한 가장 유력한 요인은 기술자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기계와 공작물, 건물 등의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조형이었다. 재료, 공작, 유지관리등 모든 부면을 가능한 한 경제성을 추구함으로써 행하여진 조형의 아름다움은 건축가들의 눈을 끌고 전과는 전혀다른 감수성을 양성하여주었다. 큰 공장이 표현하는 수평적으로 긴 선, 맛스(量)속에 단순히 반복하는 창, 철골의 골체와 리베트(鋲:넓은못 병)의 예에 서지(瑞知)되는 리듬, 거대한 원통형의 싸이로(곡물저장탑)와 오늘날까지 존재치도 않았던 기묘한 형태의 수조탑, 통신탑 등등 이러한 것들중에 사람들은 새로운 '미'를 발견했다. 만인의 눈에 확연히 표현된 형상으로서 양식혁명을 제시하는 조건이 성숙한 것이다.
1855년의 런돈대박람회의 수정궁, 1885년의 엣휄탑과, 기계관, 로벨.마이얄(瑞西:스위스)의 1901년대부터의 교량의 일련의 데자인, 오오규스트.뻬레이의 벌써 고전에 속하는 철근콩크리이트건축들, 이러한 구조혁명에의 진전이 미국의 스카이스크레이퍼어를 하늘 높이 올리고 금차대전이후의 7센치미터의 엷은 판으로서 셀(殻 껍질 각)구조를 발전시켜 이태리 미라노공대 교수 루이지.넬비의 웅대하고 신비로운 파리 유네스코 회관의 구조계획, 우튜 린의 시장건축(195M10센치스판)등의 조형적으로도 아름다운 작품을 창조케끔 되었다. 그리하여 멕시코의 "칼데라", 미국의 "휼라"등의 새로운 공간이 새로운 기능을 충족시키며 발전하고 잇다.
4. 자매예술과의 관련성
이러한 구조공학면의 활발한 진전에 뒷바침하여 현대건축가들의 꾸준한 조형공간의 새로운 표형방식의 현대적인 해결이 추구되었다.
와그너어의 제자인 베렌스의 1909년의 작품인 "AEG타이빈공장"은 공장건축에 있어서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고 그의 문하생인 푸랑쓰의 루.콜뷰제와 독일출신의 알터어.그로피으스는 그뒤를 이어 거대한 현대건축의 리더어슆을 맡아 본다.
1919년에 와이말에서 창설된 바으.하우스는 이론, 기술, 실천을 통일시키는 새로운 씨스템의 건축, 공예학교였으며 그로피으스가 이끌어 기계시대의 예술을 창조하려는 새로운 예술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이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현대조형예술의 기본표현의 근원을 이루웠고, 이는 미국과 전후독일에 계승되어 이리노이공과대학과 우름시립미술학원에서 더욱더 진전되고있다.
이 "바으.하우스"운동은 건축을 중심으로 회화, 조작, 공예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횡적으로 음악, 연극, 영화 및 사진등 자매예술에까지도 상호관련지어 제예술의 교류와 종합을 꾀하여 그로피우스의 국제건축이론과 모호리, 나기의 기계예술이론은 20세기의 조형미학의 근원적인 이론으로써 중요시되고있다.
특히 그로피우스의 "건축은 항상 국민적이며 개성적이나 개인, 민족, 인류의 3개의 동심원중 최후의 최대의 원이 다른 2개를 포함한다"는 국제건축이론의 주장(1926)은 같은 공업적인 기술위엔 같은 표현이 나타날것이라는 현대건축의 원리의 보편성을 말한것으로서 1920년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이론이다.
푸랑스에서는 루.콜뷰제가 "건축이냐 혁명이냐"라고 부르짖고 유명한 "집은 살기위한 기계이다"라는 말을 비롯하여 기발한 경구와 시적표현으로 잡지"신정신"에 의하여 기계의 미관을 선전하며 현대건축의 챔피온쉽을 주고 아카데미즘에 대담하게 육박한다. 그의 작품은 그가 주장하여 국제적인 공명을 자아낸 삐로티이(독립재) 옥상정원, 자유스러운 평면, 옆으로 긴창, 정면형성의 자유라는 현대건축의 5대원칙에 의거한 단순하고 인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건축으로서 중목(衆目:대중들의 눈)을 놀라게 하였다.
"빛나는 도시" "녹색의도시"등의 주택군 및 새로운 도시계획에의 현대적인 해결책의 발표는 건축뿐만이 아니라 도시계획에의 현대적인 해결책의 발표는 건축뿐만이 아니라 도시계획에의 건축가의 적극정인 참가를 요청하여 국제적이 일대운동을 일으켜 드디어는, 1927년의 국제연맹회관의 루.콜뷰제 국제현상설계 1등당선안이 실제에있어 각하됨으로써 일대 물의를 일으켜 동년 CIAM(국제현대건축가회의)이 구성되어 생활최소한주택문제 도시계획의 기본문제등의 긴급한 요건들이 34개국의 유능한 건축가들에 의하여 논의되고 실천되어 현대건축의 가장 주동적인 움직임을 맡아보아 10회를 거듭함으로써 도시헌장 및 주택헌장을 통과시켜 놓았다.
그리하여 건축의 공업생산화문제가 깊이 취급되어 특히 픈레화브(주택의 공장생산화)가 전후 주택건설의 핵심을 이루게끔 되었다.
도시계획면에 있어서도 인간적인 문제로서 "코아" (核)의 문제가 논의되어 인간생활의 통일을 가져오며 우리들의 도시에 더욱 녹지와 공동시설을 장만할수있는 길을 구하려고 애쓰고 있다.
인도의 픈잡정부의 수도 샨디갈의 건설은 사막 위에 50만의 인구를 수용할 완비된 현대도시로서의 면모를 방금 보여주고있어 앞으로의 새로운 도시구성의 기본원칙이 될 것이다. 그의 정력적이며 강력한 조형정신은 세계각국에 계승되어 뉴우스카일, 아아키텍촤아의 톺. 모오드를 이루고 있는 현상이다.
그밖에 형태의 완성과, 미국공업체제의 창조적인 발전가로서 이름높은 미이스.봔.데아.로오헤의 남북미에 있어서의 ㅣ커다란 영향력과, 인간적인 온도와 본질적으로 현대적인 해결의 아프로오케를 아름다운 표현으로서 감동시키는 휜랜드의 알봘.알토의 강력한 북구에있어서의 영향력은 우리들이 높이 평가하여야하는 동시에 깊어 연구되어야한다.
5. 건축기업가들의 반성.
이렇듯 1세기를 통하여 정형화되어온 현대건축의 이념과 표현은 유독 한국에 있어서뿐만이 거부될 까닭은 없다.
해방이후 한국지상에 이루워진 건축문화를 살펴볼때 안가한 모방과 추악한 구축물들이 연출하는 형언키 곤란한 난잡상은 보는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자아낼 뿐만이 아니라, 도시미관상 용납키 힘들 상태에 놓여져있다. 건축의 기본 요건조차 제대로 파악치 못한채 비양심적으로 그려지는 수많은 도면들이 몰리해한 기업주들에게 아부하여 귀중한 인간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사명을 완수는 커녕 불편과 허위로써 외국잡지의 알라.모오드를 충분히 소화치도 못한채 안이하게 제공하려는 비건축가들의 행동은 이가 건축가인체 가장하려는데서 더욱 논란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마땅히 구성사회에 해독을 끼친 책임을 감수하여야 한다.
서향직사광선을 막아야하는 루어버어가 더욱 광선을 도입하는 반대역활을 맡아보는가하면, 무슨 장식인양 북향에 붙기도하여 건축학의 초보의 문제조차 올바르게 지켜지지도 못하는 한국건축계는 불모지인양 잡초만이 무성하는가보다.
건축이란 종합예술로서 조형예술의 일익을 튼튼히 맡아보아 그가 존재케된 시대와 국가를 솔직히 대변하는 창조물로서 외벽에 타일을 부치고 흐랫트.루흐로 이루워진다고해서 이가 현대건축이며 또한 이를 도면화했다고 해서 건축가라고 불리워질 명예를 향유할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다.
오히려 국가의 체면을 손상하고 귀중한 자금과 재료의 낭비를 초래한 죄과는 이가 지구표면상에 길게 정착되는 까닭에, 또한 인간에게 불편과 불쾌감을 자아내는 까닭에 도의적으로나 법적으로 응당 처단을 받아야하며 이의 존재를 방조한 기업가들의 무지도 또한 시정되어야 할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현대건축이 직면하고있는 중요한 명제인 새로운 조형언어에 의한 이의 인간화와 유기화에의 접근을 통한 국민의 건축 확립이 진지한 상호비판을 거쳐 진일보해야할 시기에 놓여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한국에 있어서는 백만호를 추산하는 주택부족을 기술적으로 또한 조형적으로 해결해야할 시급한 시기에 놓여져있는 동시에 기능이 마비된 도시의 개편 문제와 농촌주택문화의 질적향상도 또한 중대한 안건이 아닐수 없기 때문이다.
허다한 안건을 명확히 처리해야할 계획가인 건축가(그가 참다운 뜻에서 향유하고자 원한다면)들은 서로 접근하고 향상할수있는 공도의 광장을 장만해야하며, 현대가 시도하는 사회적, 과학적, 경제적, 조형적인 의의와 성과를 깊이 탐구하는 도이에 현대의 국제적일환으로서의 건축문화의 질적향상에 과감하여야 할것이다. -(끝)-